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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엄마의 명화 해설

형태로 감정을 말하는 조각가 브랑쿠시의 작품세계 함께 감상하기

어느 날 아이가 한 조각 작품 앞에 서서 이야기했습니다.
“엄마, 이건 얼굴도 없고 팔도 없는데 꼭 자고있는 사람처럼 보여요.”
눈을 감은 듯한 긴 타원형의 황금빛 조각 앞에서, 아이는 무언가 조용한 감정을 느낀 듯 보였습니다. 그 조각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잠자는 뮤즈》였습니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복잡해지는 작품이었지요.

브랑쿠시는 조각의 전통적인 개념을 바꾼 인물입니다. 실제 사람과 똑같이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어떤 감정이나 상태의 ‘본질’을 간결한 형태로 표현하려 했지요. 그는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조각의 역할이다”라고 말했어요.

브랑쿠시의 작품을 접할때마다 그 단순함 안에 담긴 강렬한 감정의 밀도가 깊게 다가옵니다. 형태의 간결함 때문에 아이와 함께 감상하기에도 좋은 작가입니다. 아이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고, 복잡한 설명보다 “이건 뭐 같아?”라는 질문 하나로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이번 글에서는 브랑쿠시의 대표작들을 중심으로 형태와 감정, 상징과 상상력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함께 살펴보고,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상 팁도 소개해 드릴게요.

 

조각 작품 함께 감상하기

브랑쿠시는 왜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들었을까요?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19세기 말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조각가예요. 젊은 시절에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조각을 배웠지만, 곧 그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죠. 그는 조각이 단지 사람이나 동물의 모양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가진 에너지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브랑쿠시의 조각은 대부분 형태가 매우 단순합니다. 얼굴에는 눈도, 코도, 입도 없고, 몸통에는 손이나 발도 생략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형태를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조용히 피어오르지요. 이는 단순함이 감정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깊이 스며들게 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나무, 돌, 청동 같은 자연 재료를 그대로 살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가공을 많이 하기보다는, 재료의 질감과 형태에서 나오는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중시했지요.

아이가 조각을 보고 “이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정답을 말해주는 대신 “너는 이게 뭐처럼 보여?”라고 물어보는 게 브랑쿠시 작품 감상의 좋은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태만큼이나 그의 작품은 제목 또한 간결합니다.《새》,《잠자는 뮤즈》,《키스》등의 대표작을 보면 짧고 직관적인 이름을 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제목은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지요. 아이에게 “만약 이 조각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한마디를 할까?”라고 물어본다면, 감정과 형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이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 될 거에요. 

 

《잠자는 뮤즈》와 《새》를 감상하며 읽는 감정의 곡선

브랑쿠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잠자는 뮤즈》는 부드러운 타원형의 머리 조각이에요. 눈은 감겨 있고, 입술은 다물어져 있어요. 표정도 없고 장식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조용하고 고요한 감정이 전해집니다. 아이는 이 작품을 보고 “자는 거 맞죠?”, “왜 베개도 없고 이불도 없어요?”라고 물을 수 있어요. 이때 “이건 진짜 자는 사람일까, 마음속에서 조용히 쉬고 있는 걸까?”처럼 질문을 확장해보면, 감상은 더 깊어집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새》는 길고 매끄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청동 조각이에요. 날개도 없고 부리도 없는데, 전체적인 형태에서 하늘을 나는 느낌, 상승하는 기운이 전해집니다. 브랑쿠시는 단지 새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니라, ‘나는 행위’ 그 자체의 본질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예요.

 

아이와 이 작품을 감상할 땐 아래와 같이 질문해보세요. 

 “이 새는 어떤 방향으로 날고 있을까?”
 “이 조각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면 어떤 소리일까?”
 “만약 이 새가 멈춰서 말을 걸어온다면, 어떤 표정일까?”

이런 열린 질문은 감상을 단순한 설명에서 감정의 상상으로 확장시켜 줍니다. 특히 《새》처럼 형태가 단순한 조각은 말이 없지만, 아이의 상상 속에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형태를 통해 감정을 상상하는 법을 배우다

브랑쿠시의 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형태는 단순하지만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곡선의 방향, 조각의 기울기, 재료의 반짝임이나 매끄러움, 그림자가 드리우는 방향까지 모두 감정 전달에 기여합니다.

《키스》라는 작품을 보면 두 인물이 꼭 껴안고 있는 사각형 조각이에요. 눈은 한 줄로 이어지고, 팔과 다리는 구분 없이 맞물려 있어요. 아이가 “이건 너무 딱딱해서 키스 같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면, “그럼 너에게 키스는 어떤 모양일까?”라고 되물어보는 것도 감상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어요.

이런 감상은 아이가 자신만의 감정 언어를 만들게 도와주는 과정이에요. 단지 보는 것을 넘어서, 느끼고 해석하고 연결하는 감정 훈련이 되지요. 큐레이터로서 이런 감상 방식은 작품의 의미를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작품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브랑쿠시의 작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아요.

“너는 어떻게 느끼고 싶니?”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감정의 공간을 열어주는 조각. 아이에게 그런 경험을 선물해 줄 수 있다면, 예술 감상의 가장 깊은 출발점이 될 거예요.

 

아이와 함께 브랑쿠시 감상을 확장하는 방법

브랑쿠시의 작품은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상상하게 만드는 데 매우 적합합니다. 실제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 기억을 동원해서 감상에 참여하게 되죠.

1. 감정–형태 매칭 활동
여러 감정 단어(기쁨, 조용함, 분노, 설렘 등)를 적은 카드를 만들고, 브랑쿠시 작품 사진을 보며 “이 조각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감정은 무엇일까?”를 함께 매칭해보세요.
형태가 감정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요.

2. ‘소리로 바꾸기’ 놀이
브랑쿠시 조각을 보고, “이 작품에서 들릴 것 같은 소리는?”이라고 질문해보세요. 아이는 “바람 부는 소리 같아요”, “새가 푸드덕 날아가는 소리예요”처럼 감각적인 반응을 보여줄 거예요.

3. 나만의 상징 조각 그리기
“너는 사랑을 조각으로 만든다면 어떤 모양일까?”, “조용함을 표현하고 싶다면 어떤 색과 선을 쓸까?”
이런 질문을 통해 아이는 감정을 형태로 바꾸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4. 전시장 감상 팁
실제 브랑쿠시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다면, 정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위에서, 그림자와 함께 감상하도록 유도해보세요. 아이는 조각의 입체감과 공간 속 배치를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어요.

브랑쿠시 감상은 ‘이건 뭘 그린 거야?’라는 질문보다, ‘이건 너에게 어떤 느낌이야?’라는 감정 중심 질문으로 이어질 때 훨씬 풍부해집니다. 아이의 감정과 감각이 예술을 통해 자라는 순간을 함께 해보세요.

 

브랑쿠시의 조각은 화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지만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단순한 곡선과 매끄러운 표면은 오히려 감정을 더 깊이 스며들게 하지요. 아이와 함께 감상하는 이 조용한 조각들은 아이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감정을 나누는 방법을 가르쳐 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