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감상하다 보면, 어떤 작품은 눈에 익은 사물이나 인물 없이 색과 선만 가득한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퍼즐 같기도 하고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것이 바로 '추상화'입니다. 추상화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을 그대로 그리는 대신, 화가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색과 형태로 표현하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추상화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그려지는 건 아닙니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둘 다 추상화의 대표 작가지만 작품의 느낌은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어떤 작품은 자유롭게 흩뿌려진 색과 선으로 가득하고, 또 어떤 작품은 바둑판처럼 정확한 선과 네모가 반복되죠.
이 글에서는 두 화가의 대표작을 함께 감상하며, 같은 추상화지만 왜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지, 그리고 아이와 함께 감상할 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소개해드릴게요. 추상화의 두 거장을 비교하면서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도 함께 느껴볼 수 있을 거예요.
감정이 흐르는 그림 - 칸딘스키의 자유로운 추상화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했던 추상미술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그림을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실제로 음악을 좋아했던 칸딘스키는 그림 속에서 소리와 감정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구성 VII(Composition VII)》은 강렬한 색과 복잡한 선, 둥글고 날카로운 형태들이 뒤섞여 있어 처음 보면 "이게 도대체 뭐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고 있으면, 마치 여러 악기 소리가 섞인 하나의 음악과 같은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빨간색은 열정, 파란색은 차분함 등 그의 작품에서 선의 굵기와 방향은 감정의 흐름을 표현하는 도구가 됩니다.
아이들과 이 작품을 감상할 때는 "이 작품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어떤 악기의 소리가 연상되니?" 같은 질문을 건네보세요. 칸딘스키의 작품은 정확히 무엇을 그린 건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일깨우는 그림이니까요.
규칙 속에 담긴 아름다움 - 몬드리안의 질서 있는 추상화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로, 칸딘스키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연을 보면서도 복잡한 형태 대신 본질적인 구조와 질서를 찾아내려는 태도를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점점 단순해졌고, 마지막에는 선과 색만 남게 되었죠.
그의 대표작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을 보면, 화면 전체가 검은 직선과 흰 바탕, 그리고 일부 네모 칸에 색이 채워져 있어요. 얼핏 보면 단순한 수학 문제 같기도 하고, 현대 건축 도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혼란 속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려는 몬드리안의 철학이 담긴 작품이에요.
아이와 함께 감상할 때는 "이 색은 왜 여기만 들어갔을까?", "이 선이 조금만 길거나 짧았으면 느낌이 달라졌을까?" 같은 관찰 중심의 질문을 던져보세요. 작고 단순한 차이들이 전체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추상화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수학이나 도형을 좋아한다면 몬드리안의 그림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추상화의 두 얼굴 - 감정과 질서의 대조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둘 다 '추상화'를 그렸지만, 표현하고자 한 방향은 매우 달랐습니다. 칸딘스키는 그림을 통해 감정을 자유롭게 흘러가게 만들었고, 몬드리안은 철저한 규칙과 질서를 통해 조용한 안정감을 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칸딘스키의 그림은 "지금의 내 마음이 이래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면, 몬드리안의 그림은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만들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전자는 음악처럼 흐르고, 후자는 구조처럼 세워져 있죠. 아이에게 이 차이를 설명할 때는 "하나는 춤추는 그림 같고, 하나는 조용히 숨 쉬는 건물 같아"라고 말해보는 것도 좋아요. 이렇게 비유를 활용하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이처럼 같은 '추상화'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작가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방식은 다양합니다. 아이에게는 작가의 다름을 통해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요.
추상화를 감상하는 놀이 - 감정과 질서로 그려보기
아이와 함께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작품을 비교 감상했다면, 작품과 연계하여 직접 표현해보는 활동으로 연결해보세요. 아주 간단한 재료만으로도 쉽게 시작할 수 있어요.
먼저 칸딘스키 스타일 그리기는 '기분을 색으로 그려보기'입니다. 오늘의 기분을 여러 가지 색과 선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게 해주세요. 색연필, 크레용, 물감 뿐만 아니라 실, 테이프, 노끈 등 선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도 좋아요. "슬픈 기분은 어떤 색일까?", "기뻐서 뛰는 느낌은 어떤 재료의 선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통해 감정과 그림을 연결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세요.
다음으로 몬드리안 스타일 그리기는 '질서 있게 나만의 네모 구성 만들기'를 추천합니다. 흰 종이에 검은색 직선을 그리고, 몇 개의 칸에만 파랑, 빨강, 노랑 중 하나를 선택해 색을 채워보게 하세요. 이때 "어느 칸에 색을 칠할지 고민해볼까?", "여기엔 색을 넣지 않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같은 말로 그림의 균형을 스스로 조절해보도록 도와주세요.
이런 활동을 통해 아이는 두 작가의 스타일을 직접 체험하며, 감정의 자유로움과 생각의 질서를 몸으로 익힐 수 있습니다. 미술이란 그저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고 이해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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