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그림을 볼 때 "여기 세모가 숨어 있어요.", "이건 동그라미 같아!"와 같은 말을 자주 듣습니다. 아이의 눈은 형태를 가장 먼저 인식하고, 그 안에서 익숙한 도형을 찾아내며 세상을 해석합니다. 그래서 미술 감상에서 '도형'은 아이와 예술을 연결하는 가장 친숙한 다리가 됩니다.
명화 속에도 수많은 도형이 숨어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선과 면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또 어떤 작가는 규칙과 계산을 통해 화면을 채웁니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그 독특한 그림들 뒤에는 단순한 원과 사각형, 직선과 곡선들이 중요한 주인공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이 글에서는 도형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던 네 명의 대표적인 작가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 파울 클레, 솔 르윗의 작품을 함께 감상해보려 합니다. 아이가 좋아할 만 하고 함께 따라 그려볼 수 있으며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선을 담은 작품들이죠. 명화 속에 숨어 있는 도형을 찾아보는 이 감상 여행이, 아이에게는 단순한 작품 읽기를 넘어선 관찰력, 표현력,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의 확장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호안 미로 - 기호처럼 말하는 도형
스페인의 화가 호안 미로(Joan Miró)는 아이처럼 상상하고, 상상처럼 그린 작가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나무나 집, 동물 같은 구체적인 형상보다는 기호처럼 생긴 도형들이 자유롭게 떠다닙니다. 곡선과 점, 별 모양, 눈처럼 보이는 동그라미가 화면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죠.
대표작 《파랑의 구성(Composition in Blue)》이나 《별이 있는 여성과 새》 같은 그림을 보면, 마치 우리가 쓰는 문장 기호나 알파벳, 상상 속 동물들이 추상적으로 변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건 눈일까? 아니면 별일까?" 하고 묻고 싶어지는 그런 이미지들이에요. 아이들과 감상할 때는 "이 그림에선 무엇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니?", "네가 아는 도형이 몇 개 보이니?"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그림에 몰입하게 됩니다.
미로의 그림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그림 속 세계'로 쉽게 들어가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형이 단지 수학책 속 도형이 아니라, 감정과 이야기, 상상력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유로운 선과 형체는 아이에게는 제약 없는 표현의 가능성을,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놀이의 감각을 불러일으켜요.
알렉산더 칼더 - 움직이는 도형의 마법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는 회화가 아닌 조형예술에서 '도형'을 가장 생생하게 움직이게 만든 작가입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익숙한 모빌이라는 개념을 예술로 끌어올린 인물이기도 하죠. 천장에서 매달린 색색의 원, 반원, 삼각형 조각들이 바람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칼더의 모빌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책처럼 재미있습니다.
칼더는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공간 속에 색과 도형이 춤추도록 만들었어요. 대표작 《붉은 태양(Red Sun)》이나 《모빌(Mobile)》 시리즈를 보면, 단순한 형태와 색이 어떻게 전체 공간을 구성하고 감정을 전달하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영상을 통해 칼더의 모빌이 움직이는 장면을 보여준 뒤, "색깔 도형이 하늘에서 논다면 어떤 기분일까?", "너라면 어떤 도형을 공중에 띄우고 싶니?" 같은 질문으로 확장해보는 것도 좋아요.
또한 칼더의 그림 작품 중 일부는 도형과 선이 평면 위에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직접 모빌을 만들지 않더라도 도화지에 움직임을 상상하며 도형을 배치하는 활동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도형이 단순히 정적인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가진다는 개념은 아이들의 표현력과 공간 감각을 풍부하게 키워줍니다.
파울 클레 - 도형으로 만든 동화 같은 세계
스위스 출신의 파울 클레(Paul Klee)는 음악과 색, 언어, 도형을 넘나들며 마치 꿈을 꾸듯 그림을 그린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따뜻한 색조와 단순한 도형 구성이 특징인데, 마치 아이가 색종이로 집과 나무, 하늘을 오려 붙인 듯한 동화적인 구성이 매력입니다.
대표작 《Senecio(세네시오)》에서는 둥근 얼굴 모양에 사각형과 삼각형이 결합되어 인물의 표정을 단순하게 표현합니다. 또 다른 작품 《Castle and Sun》은 다양한 크기의 사각형과 삼각형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성과 태양을 이룹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을 보고 "이건 마치 블록을 쌓은 것 같아요!", "이 집은 꼭 피라미드처럼 생겼어요."라고 말하기도 해요.
클레의 작품을 감상한 뒤에는 간단한 활동으로 연결해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색종이로 다양한 크기와 색의 사각형과 삼각형을 오려서 도화지 위에 자유롭게 조합하게 해보세요. "성처럼 만들어볼까?", "태양은 어디에 놓을까?" 같은 질문을 던지며 아이의 시선을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구도와 색의 조화를 고민하게 됩니다. 색연필이나 물감으로 배경을 칠하며 '나만의 동화 속 마을'을 완성하도록 유도하면, 추상화와 상상력, 색감 구성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종합 활동이 됩니다.
클레의 작품은 도형을 사용하되 수학적으로 정교하다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따뜻한 구조로 표현합니다. 아이와 감상할 때는 "이 도형이 무엇을 표현한 걸까?"보다는 "이 집에 누가 살고 있을까?", "이 태양은 기뻐 보일까, 무서워 보일까?"처럼 이야기 확장형 질문을 활용하면 더 풍부한 감상이 가능해요. 이처럼 클레의 작품은 감정, 상상, 형태를 동시에 끌어낼 수 있습니다.
솔 르윗 - 규칙에서 만들어진 예술
솔 르윗(Sol LeWitt)은 미국의 미니멀 아트와 개념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규칙과 반복, 계산에 가까운 도형의 배열을 통해 예술이 감정뿐 아니라 ‘아이디어’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보는 수학’과도 같죠.
대표작 《벽 그리기 시리즈(Wall Drawings)》에서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선, 사각형, 원 등을 배열해 화면 전체를 구성합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패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색의 흐름, 간격의 변화, 규칙 안의 미묘한 감정이 숨어 있어요. 이런 작품을 아이와 감상할 땐 "이건 무슨 규칙으로 만들었을까?", "이 패턴을 계속 이어가면 어떤 모양이 될까?"처럼 관찰과 추론을 자극하는 질문이 효과적입니다.
솔 르윗의 작품은 도형을 통해 생각하고, 관찰하고, 규칙을 읽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탁월해요. 특히 도형을 좋아하거나 수학에 흥미가 있는 아이에겐 미술이라는 또 다른 언어를 알려주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경험이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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