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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엄마의 명화 해설

세잔의 사과는 왜 흔들려 보일까? 큐레이터 엄마가 들려주는 명화 속 관찰력 이야기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서 정물화를 감상하다 보면, 때때로 이런 질문을 듣게 됩니다.
“엄마, 저 사과는 왜 기울어져 있어요? 떨어질 것 같아요!”
이 질문은 많은 초등학생들이 정물화, 특히 폴 세잔(Paul Cézanne)의 작품을 볼 때 느끼는 첫 인상이기도 합니다.
정물화는 흔히 ‘가장 쉬운 그림’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실제로는 형태, 빛, 구조에 대한 이해가 깊게 들어간 장르입니다. 특히 세잔은 사물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구한 작가로, 정물화를 통해 ‘보는 방식’ 자체를 질문한 화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큐레이터로서의 미술 전문성과 엄마로서의 교육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잔의 정물화가 왜 아이들에게 독특하게 느껴지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관찰력과 표현력이 자라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큐레이터 엄마가 들려주는 명화 속 관찰력 이야기

 

폴 세잔은 누구인가요? - 고요한 사과에 숨겨진 질문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활동한 폴 세잔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했지만 후기에는 입체파와 현대미술의 기반을 놓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그의 정물화는 단순한 사물의 배열이 아니라, 그 안에 구조와 시선, 감정까지 담겨 있는 고도의 조형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잔은 과일, 병, 접시, 식탁보 같은 평범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시점은 항상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접시는 기울어져 보이고, 병은 약간 뒤틀려 있으며, 사과는 서로 크기가 달라 보입니다. 대표작인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빵과 계란이 있는 정물>, <테이블 위의 정물> 등에서는 이러한 시점 왜곡과 형태의 재해석이 두드러집니다.
아이와 함께 세잔의 작품을 감상할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주시면 좋아요.

“세잔은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과를 보면서 느낀 ‘모양의 무게감’과 ‘자리 바꿈’을 함께 담으려고 했대. 그래서 하나의 그림 안에 여러 시점이 섞여 있는 거야.”
이런 설명은 정물화가 단순히 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시선의 움직임이 살아 있는 이야기임을 알려주는 계기가 됩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이상함’은 예술적 관찰의 시작

세잔의 정물화를 처음 본 아이들은 대부분 “왜 이렇게 그렸어요?”, “접시가 떨어질 것 같아요”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상함’을 부정하지 않고, “좋은 관찰이야”라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림 속에서 사과가 흔들려 보이는 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세잔이 고의적으로 시점을 바꿔가며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건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감각을 한 화면 안에 녹여내려고 했고, 그것이 오히려 불안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는 “너는 저 사과가 어떻게 놓여 있다고 느껴져?”, “떨어질까 봐 조심스러워 보여?” 같은 질문을 던지면 관찰력뿐만 아니라 감정 표현까지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아이는 정물화를 단순히 ‘놓여진 사물을 그대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생각을 담은 그림,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림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과 한 알로 배우는 관찰력, 형태감, 색의 변화

세잔은 같은 정물 소재를 수십 번, 수백 번 그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를 회화로 풀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세잔의 정물화를 감상할 때는 사과의 모양, 색의 농도, 빛의 방향 등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활동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과는 한쪽이 더 진하네?”, “그림자도 사과 색이랑 섞여 있네?”와 같은 말을 건네보세요, 아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림 속 디테일로 빠져들거에요. 
작품 감상 후 실제 사과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아이가 직접 관찰하며 그림을 그려보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단순히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너는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보여?”, “사과가 앞으로 나와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그려야 할까?”라고 물어보며, 시각적, 공간감적 감각을 키워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런 활동은 미술 표현뿐만 아니라, 사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력과 집중력 향상에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큐레이터 엄마의 팁 – 정물화는 ‘생각하는 그림’입니다.

정물화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그리는 그림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과 시선, 그리고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세잔의 정물화는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여러 번의 시선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그림이 ‘흔들려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틀렸어”가 아니라, “다르게 보려고 한 거야”라고 설명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명화를 모른다고 겁먹지 마세요. 부모로서 그림을 설명할 때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처럼 해설하는것 보다, 함께 관찰하고 느끼는 태도가 훨씬 중요합니다. “엄마도 이 사과가 좀 이상하게 보였어”, “우리는 보통 하나의 방향에서 보는데, 세잔은 여러 방향을 담고 싶었대”라고 느낀점 그대로를 말해보세요.
그림은 정답이 있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주는 도구입니다.
오늘 저녁, 사과 한 알을 책상에 올려놓고 아이와 함께 그림 속 사과와 비교해보세요. 그 시간이 세잔이 했던 관찰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릅니다.